9월 19일에 독학사 3단계 결과가 나왔다. 총 8과목 중 6과목만 합격하면 되는 시험인데, 작년에 이미 5과목을 합격한 상태여서 이번에 응시한 1개 과목만 붙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58.5점으로 탈락이었다. 1.5점이 부족했고 이는 객관식 하나만이라도 더 맞추면 될 정도로 아까운 점수였다. 4일동안 준비한 시험이었기에 믿기가 어려워 이의신청도 두 번이나 했지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입장만 돌아왔다. 알고보니 내가 문제를 잘못 보았던 것으로 결론을 냈다.
당시에는 전역까지 단 두 달밖에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었다. 독학사를 따자는 계획은 지금으로부터 약 1년 반 전, 자대배치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세웠던 중장기 계획의 일환이었다. 현재 학교를 2학년 1학기까지만 마치고 왔던 나는 2학년 수료자 부터 편입학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약간의 꾀를 내어 군 생활 중에 이 자격을 갖출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니 학점은행제와 독학사라는 두 제도가 있었다. 처음에는 지원자격이라도 갖추자는 마음으로 독학사만이라도 따고자 했다. 1단계부터 4단계까지 있는데, 각각이 한 학년과 같다고 보면 된다. 4단계는 졸업시험이라 제외하고 3단계부터 봤는데 이게 웬걸, 한 달밖에 준비하지 않은 시험이 5개 과목이나 합격한 것이다. 편입학 시험을 준비하면서 학사 졸업도 같이 노려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1단계는 다니던 학교 수료결과로 대체하고, 다음해 봄에 본 2단계 시험은 전과목 합격했다. (각 분기마다 각 단계의 시험이 있다) 시험이 너무 쉬웠기에 떨어질거란 생각을 못한 게 화근이었다. 그렇게 3단계의 하나 남은 과목을 떨어졌고, 12개월간 공들여 준비한 독학사와 편입학 시험 모두 무너졌다.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고, 사흘이 지나니 막막함에 잠에 쉽게 들지 못했다. 근래의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리고 주요한 기쁨의 출처였으나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다. 당시에는 하나님께 제발 공부를 다시 하게 해달라고, 다시 할 수만 있다면 더 열심히 하겠다고 빌었다. 한편에는 이제 무얼하고 살아야 하나 하며 급작스럽게 멈춰버린 시간을 돌릴만한 것을 찾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났고 시간은 다시 돌아갔다. 읽을만한 소설을 들고 출근했고 퇴근하고 나면 게임부터 켰다. 게임이 질리면 코딩을 했다. 글도 쓰고, 릴스도 보고, 교환학생도 알아봤지만 허전한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 내게 학점은행제를 알려줬다. 이중학적 제한에 걸려 못하는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걸리지 않고 독학사로 채운 학점이 있으니 일반 편입 지원자격 정도는 갖출 순 있겠다고 했다. 열심히 찾아봤더니 고대는 안되고 연대는 맞출 수 있었다. 그 시점이 9월 말일이었다.
문제는 앞으로 따야 할 학점에 있었다. 학점은행제로 지원 가능한 연세대의 최소 학점은 70학점인데, 내게는 57학점이 있었다. 13학점 이상을 인정해주는 자격증을 하나 따야했다. 지금 시도해볼 수 있는 건 컴퓨터활용능력 1급과 네트워크관리사 2급이 있었다. 그래서 컴활 책 7만원어치를 사서 일주일 동안 신나게 공부했다. 모의고사는 80점이 나왔고 60점 이상만 나오면 되었기에 충분히 합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활 필기도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결과는 종합 63점으로 겨우 넘은 수준이었다. 문제는 일주일 안에 실기 시험도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검색해보니 실기는 필기보다 훨씬 어렵다는 글이 많았다. 누구는 19번 시험쳐서 합격했다는 후기도 있었다. 상황상 10월 둘째주 내에 따야하는데, 불확실한 상황에 자원을 낭비할 수 없었다. 지금은 마지막 카드로 12월 1일에 보는 네트워크관리사 실기시험을 남겨두고 일단 편입 시험부터 공부하고 있다.
(컴활은 2024 개정 이후로 많이 어려워졌다. 필자는 작년에 하나도 공부를 하지 않고 컴활 시험을 봤을 때는 59점을 받았는데, 올해에는 공부를 많이 했음에도 거의 오르지 않았다.)
사실 편입이라는게 이렇게 고비를 겪으며 공부하는게 전혀 아닌데, 돌아보니 나만 이상한 루트를 발견해서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고있었다. 그리고 편입을 준비하는 이유가 내가 원하는 공부와 경험을 하기 위함인데, 컴퓨터활용능력이나 네트워크관리사 같은 취업을 위한 도구에 집중하는 건 나의 지향이 아니었다. 편입 준비할 시간에 차라리 코딩을 더 했었더라면? 아니면 창업 관련 책을 더 많이 읽었더라면? 지금처럼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다. 오랜시간 공들여 준비한 탑이 무너진 모습을 보고있자니, 한편으론 준비한 다른 주제가 전혀 없는 나의 모습에 후회가 밀려왔다.
기회가 다시 한 번 주어지면 열심히 하겠다고 빌었지만 막상 주어지고 나니 공부가 잘 안된다. 마음같아선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집중해서 공부만 하고싶지만, 몸이 거부한다. 마치 어떤 사람에게 쎄게 얻어맞으면, 다음 번에 그 사람을 보기만 해도 움츠라드는 것처럼. 12개월 실패의 경험이 회복하지 못할 상처를 남겨준 것 같다. 그 이유가 독학사의 부족한 1.5점 때문인지, 아니면 컴활 자격증 공부를 위해 공용 컴퓨터에 엑셀을 깔고 타이핑하는 내 자신에 회의적인건지, 아니면 접고 다른걸 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부쩍 강해져서 그런지 모르겠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무엇이 문제인건지 답답해서 글을 남겨본다. 편입 공부를 하는 주된 이유는 성공하는 경험을 하기 위함이다. 물론 수업의 질 향상, 통학 거리 감소, 팀 빌딩 같은 가시적인 베네핏도 있긴 하지만 그렇게 중요하진 않다. 2023년 회고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하고싶은 것만 하며 살았다. 그리고 하고싶은 것은 대개 여러명 중에 석차를 내는 챌린지가 아니라 이를 피하기 위한 도피처와도 같았다.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챌린지가 생길텐데, 이 챌린지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못하고 도피하기 위한 방법만 생각한다면 앞으로도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편입 공부를 하는 것인데... 독학사에서 이미 막혀버렸다. 물론 누가 첫 번째 시도에 성공을 하겠냐마는, 그 경험이 아파서 실패에 익숙해지고 있다. 실패해도 결국 성공할거란 믿음이 져가고 있다. 나는 또 실패하는게 너무도 싫기 때문에 결국은 타계해야 하지만 아직 방법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