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과 면담하던 중이었다. “저는 코딩, 영상, 디자인, 기획 다 어느 정도 해요. 이것들로 돈도 벌고요.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넷 중에 하나만 살리는 방향으로 가고 싶진 않아서요.”
사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교수님은 하고 싶은 걸 다 해보신 분이었다. 그런데도, 자기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나에게 왜 열심히 사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질문하셨다. 작년에 작성한 2021년 회고를 전날 읽어간 덕택에, 제법 유창하게 답할 수 있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겉보기에 세상은 적당히 풍요로워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기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중엔 소외되거나 지켜야 하는 것이 있는 사람도 있어요. (중략…) 그들을 위한 변화를 만들고 싶어요.”
면담이 끝날 무렵 교수님은 내게 자신의 과목인 “미디어 심리학”을 추천해주셨다.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만 돌아가진 않는다면서, 데이터와 심리학을 배우며 세상을 한층 더 이해해보고 세상을 바꾸는 기획자가 되라 하셨다.
말은 있어 보이게 했을지 몰라도 지금 생각은 이전과 다르다. 이전에는 비주류일수록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회 문제 해결 동아리나 공부를 하면서 거의 다 국가나 단체가 잘 해결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건 한쪽 편을 들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거란 예감이 들었다. 전장연이나 특정 환경단체의 선 넘는 행태가 많은 실망을 안겨준 것도 한몫했다.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건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은 누군가의 신념 하에 만들어졌을 확률이 높다. 크리에이터 정신을 가진 애플은 개발자 주도의 앱 생태계를 만들었다. 사람들을 연결하는 페이스북은 인플루언서 위주의 사회로 이끌었다. 그런 변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의 혁신가들과 나는 큰 벽이 있어서 내가 그들처럼 되지 못할 것 같았다. 답답한 심정이었고 사회의 멋진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처음으로 만났던 분은 개발자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개발 생태계 속에서 개발자 커뮤니티를 주도하면서도 엄청난 개발 능력을 갖추고 계신 분이었다. 직업 외에 많은 활동도 겸하시는 걸 보며 남들에겐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나이 차이는 대략 열 살 정도였으니 10년 안에 저렇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처음 이렇게 만나다 보니 떨리기도 하고 약간의 후회도 하고 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이어가다 어렵게 본론을 꺼낼 수 있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지였다. 10대는 모두가 열심히 하지만 20대에 열심히 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 어려운 걸 해내야 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역설적으로 본인은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했다. 보이는 업적들은 그냥 하다 보니 된 것이며 나 또한 꾸준히 하다 보면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조언해주었다. 그러나 인생의 전환점이 하나 있었는데, 경상도 사람으로서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가게 된 서울의 컨퍼런스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저 성실하게 공부하고 학점 따는 게 다인 줄 알았는데 그때 다른 세계가 있음을 처음 알았다며, 성실함보다 경험이 더욱 중요하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시야가 넓어지니 보는 것도 많이 바뀌었고 그때 이후로 각종 커뮤니티나 학생 멘토 등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듣고 나니 꾸준히 무언갈 한다는 개념보단 꾸준히 문제의식을 느끼는 게 중요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 높은 점수에 대한 강박이나 사회가 숭상하는 무언가를 좇는 사람들이 있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경주마가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체계에 대한 순응이 아닌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기업가 정신이다. 큰 직관의 변화였다.
창업은 관둘 거라며 노래를 부르고 다녔었다. 작년에 사업자를 내면서 월별로 빠져나가는 유지비나 계약서 작성, 매출 등이 모두 어렵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스타트업 씬에 뛰어드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프로덕트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란 믿음 때문이었다. 아니, 노력하다 보면 어느샌가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티브 잡스도 꾸준히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2월이었다. 친구와 공동창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한 논의를 이어 나갔다. 우리는 최근 트렌드였던 뉴스레터에 집중했다. 왜 사람들은 뉴스레터를 구독할까 하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조회수가 목적인 현재의 웹 서비스가 질 좋은 콘텐츠의 생산을 저해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뉴스레터를 구독하면 자신에게 맞는 정보만 매주 들어오니까 사람들이 구독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가설이 맞는다면 풀어야 할 문제는 다소 명확했다. 뉴스레터는 좋은 콘텐츠를 제공해주긴 하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메일함도 쉽게 더러워지고, 여러 군데서 얻는 정보는 따로 정리되지 않는다.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사람들의 질 좋은 콘텐츠를 향한 니즈는 더욱 많을 것이고, 이를 잘 잡는다면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실패하고 만다. 현재 우리는 이 실패를 역량 부족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러 번 낸 사업계획서에선 간결한 니즈보단 철학적 옳음을 추구했고 결국 난해하고 읽기 싫은 사업계획서가 만들어진다. 기획에선 너무나도 큰 꿈을 가진 탓에 목표를 미디어의 전파 형태를 혁신하는 것으로 잡아버린다. (…) 바이럴 효과를 노린 시장 진입을 염두에 두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였다.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신 있게 지껄인 나의 역량 부족이고 나의 실수였다.
5번의 사업계획서 모두 탈락하며 상반기가 마무리됐다. 매번 떨어지고 고치는데 이유를 모르니 답답했다. 멘토링을 가도 속 시원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지금 짚어보면 문제는 우리가 마케팅과 정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데에 있었다. 철학과 마케팅은 서로 대척점에 있다. 마케팅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예술에 속하지만, 철학은 나와 본질을 꿰뚫는 학문에 속한다. 우리는 사업을 계획하면서 고객에게 접근해야 했지만 옳음을 추구하고 있었다.
하반기는 회사에서 앱 개발자로 일하며 지냈다. 프로토타입 제작을 위해 열심히 배워둔 플러터가 우연히 쓰일 곳을 찾게 됐다. 이 회사 말고도 플러터 관련 인력을 구하는 시드 레벨 스타트업들은 의외로 많았다. 그중에서도 창업에 일가견이 있는 대학교 동아리 선배님도 연락을 주셔서 만나게 됐다. 이때도 창업과 관련해 노력은 했지만, 진척은 딱히 없던 참이었다. 3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는데,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다.
“유니콘 할 수 있을거 같은데?”
(유니콘: 기업가치가 10억 달러(1조원) 이상인 비상장 기업)
나도 모르게 난 안되는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한마디가 크게 와닿았다. 높은 대학에서 지원 잘 받고 승승장구하는 친구들 보면서 “지원만 잘 받을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때가 많았다. 자연스레 선배님께 우리 학교는 지원도 없고 기회도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창업의 본질은 사람과 정신에 있지 않은가. 저 한마디가 정신적 한계를 깨고 계속 도전하게 해준다.
올해 말, 수업에서 교수님이 여러 얘기를 하시다가 내게 물었다. “자네는 올라가고 있나? 내려가고 있나?” 수 초간 고민하다 올라가고 있다고 답했다. 미래를 위해 포기한 과거가 많았다. 지금도 가끔 ‘캔위성 경연대회에서 더 잘했더라면…’, ‘아텍 자기소개서만 안 날렸다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올라가고 있다. 사회에 임팩트를 주는 방법을 계속 공부하고, 후배들에게 어떻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렇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새해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