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블로그를 보고 나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은 것 같다. 차린 것도 없는데 찾아와주어서 너무 감사하고 또 좋게 봐주니까 고맙고 그렇다. 내 입장에서 사람들은 주로 요즘의 창업 성과나 과학고 졸업과 같은 키워드에 끌리는 것 같다. 나도 나보다 창업 잘하는 사람들 보며 배가 무진장 아픈데 대학생들은 오죽할까. 그래서 사실 별 볼일 없는 사람임을 알았으면 해서 글을 쓴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 되는거 어렵지 않다.
고등학생 때 나는 공부를 무척이나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시험 공부를 하지 않았다. 내신도 기출 한 번을 돌려보질 않았고, 수능 국어나 영어는 한 번도 끝까지 풀어본 적이 없다. 살면서 마지막으로 영어단어를 외운 때가 초등학교 즈음일거다. 출제자의 의도를 왜 파악해야 하는지도, 정답을 왜 암기해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시험은 남들 다 보니까 어느정도만 공부한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한국 정서상 이해는 된다.
그럼 무엇을 했냐, 역설적으로 공부를 했다. 나는 과학 실험에 미쳐있었다. 중고등학교를 지나며 한 과학 실험만 100건이 넘을거다. 학교 개인 연구예산을 학교장 승인까지 얻어서 싹 다 썼다. 시험범위를 공부할 때면 하라는 기출은 안 풀고 대학서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그 이론들을 외우지 않고, 나중에 쉽게 참조할 수 있도록 하이라이트를 쳐서 남겨두었다. 지금도 방 한 켠에 정독한 캠벨과 옥스토비, 서웨이가 남아있다. 공부의 본질적인 활동에 기초해서 하다보니 시험을 잘 풀리가 없었고, 항상 6~7등급을 면치 못했다.
중학교는 내 나이부터 국제중 입시가 뽑기로 바껴서 운 좋게 들어갈 수 있었다. 이 학교는 정규 커리큘럼을 따르지 않고 활동이랑 토론만 무진장 시키던 곳이었다. 한국사는 안배우고 세계사를 영어로 배웠기에 조선은 모르지만 고대 로마, 유럽과 중국의 역사는 아는 특이한 사람이 됐다. 특히 국어 수업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토론을 시켰는데, 이때 듣고 말하며 구체화한 철학이 삶의 베이스가 되었다. 사실 중학교의 모든 동문들은 이 국어 선생님의 팬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에게 단단한 철학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비록 체언이 뭔지는 몰라도 삶과 교육의 미래는 어때야 하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기에 내가 가져가야 할 철학 또한 무엇인지 명확히 안고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강의식 교육은 산업혁명 시대의 잔재로서 인간을 정형적인 방식으로 키워내기 위한 일률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은 개개인의 창의성과 생각을 발산하는 매체가 되어야하고, 다양한 피드백과 아이디어를 경청하며 성장하는 아고라여야 한다. 고등학교는 이 니즈를 충족시키기에 적절한 장소였다. 원뿔 적분의 오차 해결을 위해 샌드위치 정리를 사용한 나는 기하적 접근을 제시한 다른 친구의 풀이를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반면 시험은 기출을 외운 수준의 빠른 풀이를 요구하기 때문에, 이쪽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시험을 잘봐야 한다는 점만 빼면 완벽하다. 항상 입시가 문제였으니.
1학년때는 연세대에서 대기과학 연구를 하며 지냈고, 2학년때는 서울대에서 생태학 연구를 하며 지냈다. 3학년때는 카이스트에서 하는 캔위성 경연대회를 나갔다. (이거 논문 다 내 블로그에 있다) 뿐만인가. 과학 실험이 너무 재밌어서 영상도 만들었다. 큰 풍선에 열화상 카메라를 달아 구름의 복사열을 측정했고 위성에 안개상자를 담아 우주선(Cosmic Ray)을 측정했다. 이것도 내 유튜브에 다 있다. 그러다 보니 사실 시험공부를 하고 많은 양의 공부를 하느라 시간을 뺏기는게 고딩 시절의 한이었다. 대학교만 가면 하고싶은거 하면서 살아야지... 하며 대학에 진학했다.
그래서 대학교에서 이것저것 하면서 살고 있다. 원래는 삼성휴먼테크라고 해서 삼성 입사보장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출전을 포기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내 팀원은 그 혜택을 받는다) 사실 이 일은 고등학교 때 학우들의 무수한 루머를 양산했기도 하다. 팀원이랑 싸운게 아니냐 같은...(팀원이랑 싸웠다고 삼성을 포기하나?) 근데 그냥 나오겠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도 삼성은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기업에 입사하는게 꿈이었으면, 학점이나 열심히 땄을거다. 어떤 선배가 내 유튜브에 남긴 댓글이 유독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삼성 가지 말고 나 같은 사람이 제발 더 큰 세계를 향해 나아가 달라라는 말...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그래서 죽기살기로 창업하고 있다.
중학교때 국어선생님은 10~20년 뒤면 세상이 우리와 같은 교육방식을 적용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실제로 AI 시대가 도래했고, 이제 암기, 강의식보다 창의성과 토론을 논해야 한다는 담론이 등장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AI 적합 인재가 되어서 AI를 통해 이것저것 만들어봤더니 대회같은 데에서 상도 주고 하는거다. 남들 다 하는거 안하면서 부린 객기가 어떻게 사람을 Exceptional하게 만드는가. 그냥 하고싶은 것만 한 Nerd의 결과다. 그래서 나 마저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동경하는 것에 새삼스럽고 그들은 나같은 인생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검증도 안됐는데 섣불리 추천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나도 일반적인 기업 가서 워라밸 챙기며 재미없고 행복한 삶이 한 편으론 좋다고 생각한다.
뚜렷한 방향을 누구도 제시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너무 어렵다. 화려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흔하지만, 이내 긴 시간 고대해야 하는 인내에 포기하고 만다. 나는 그냥 이런 수지타산 안나오는 일들을 너무 오래 하다보니, 그것에 익숙해져서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고 살고 있다. 이러다 뭐라도 못 이루고 취업할 때 되면 받아줄 평범한 회사 한 군데는 있겠지 하면서. 그런데 벌써 대학생활이 1년 반쯤 남았다 보니, 그간 이룬게 별로 없는데 이렇게 평범한 삶을 살게 되는건가 하며 괜히 마음만 조급해진다. 어쩌면 내 비전이 또래의 명망을 사는게 아니라 세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부가 지나면 앞으로 그럴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이제 학교 얘기는 여기서 끝내야지. 앞으로는 비전과 성장, 기회와 같은 이야기를 연재해보겠다.





레이더가 없는 곳(먼 바다나 개도국 등)의 강수량 측정을 위해 쓰이는 기술









나는 살면서 이상한 것들을 너무 많이 해서
아무래도 프론티어들보다는 좀 뒤처지지 않나 싶다.
생각보다
이런 경험들이 성과에 그닥 영향을 미치진 않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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